"불어봐."

저수지 앞에 바짝 차를 붙이게 한 뒤 놈에게 내가 말했다.

"뭘요?"

놈은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는 품이 한 번 붙으면 승산이 있을지 없을지 재보는 것 같았다.

"네가 한 짓거리들의 실체 전부를."

 

"아~ 씨발, 진짜."

놈은 짜증난다는 듯이 머리를 핸들 중앙 부분에 쾅쾅 두 번 박았다.

"말했잖아요. 그냥 데려가서 방 구해 주고 한 번 하고 나온게 전부라고."

놈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넌 뭣때문에 잡혀왔지?"

"전 죄 없어요. 성매매 한 거 밖에."

"성매매한 것은 맞는데 강간은 한 적이 없다?"

"그렇죠."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줄도 몰랐다?"

"헐~ 그년 어딜 봐서 미성년잡니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멀쩡하던데요."

"성인도 '가출했다'는 표현을 쓰나?"

"쓰죠, 당연히."

이미 범행에 이용한 차를 팔고 변호사까지 선임한 놈은 발뺌하기로 작정했나보다.

 

"왜 강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해도 돼냐니까 아무 말 없었고, 옷을 벗겨도 가만히 있었으니까요."

"반항이 없었으니까 강간이 아니다?"

"예, 그리고 방 구해주고 편의점 가서 먹을 거 사주고 돈도 줬어요."

"다음날 와서 또 하려고?"

"그러려고 했죠."

"그러니까 네 말은 성인여성과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한 것이다, 딱 한 번?"

"맞아요."

"그런데 피해자 말로는 방을 구하기 전에 산에서 이미 강간을 당했다던데?"

"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전혀 엉뚱한 길에 네 차가 찍힌 CCTV는 뭐야?"

놈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앞을 지나간거죠."

"피해자는 이미 강간을 한 번 당한 채로 걸음을 잘 걸을 수 없었다던데?"

"그런 것까진 저는 몰라요, 다리를 절었는지 말았는지."

 

"이 새끼!"

나는 놈의 뒷머리칼을 잡고 핸들 중앙에 머리를 찧었다.

"악!"

놈의 비명과 함께 시끄러운 경적이 울렸다.

쾅쾅쾅쾅

연속으로 네 번을 더 찧은 후 녀석의 머리를 들었다.

"말 다 했냐?"

"도대체 왜 그러는데요?"

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이마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 나 알아 몰라?"

"몰라요."

 

이제 결정을 볼 때다.

"잘됐군, 사이드 풀어."

놈이 놀라며 물었다.

"왜, 왜요?"

 

그때였다. 놈이 오른손을 휘둘러 내 오른쪽 귀부위를 세차게 때림과 동시에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정신이 아찔했지만(아! 머리에는 수트가 없다.) 나는 놈이 밖으로 도망가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놈의 후드티를 잡고 세차게 끌어당기자 놈은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조용히 문을 닫아."

놈의 머리를 핸들 아래 운전석 바닥에 닿을 정도로 짓누르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으으으~ 씨바~알"

울며 욕하며 놈이 차의 문을 닫았다.

 

차의 핸드브레이크를 풀며 내가 말했다.

"걔 있지? 네가 먹은 여자."

놈은 움찔하며 박힌 머리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손아귀 힘을 살짝 빼자 서서히 아주 느린 속도로 몸을 일으키더니 내 쪽을 바라봤다.

증오의 눈빛이 여실히 담겨 쏘아보는 것이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중 삼이다, 중 삼. 이 개새끼야."

 

나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내뱉은 뒤 오른손으로 놈의 머리를 잡아 정면으로 돌리고는 왼손으로 뒤통수를 사정없이 쳤다.

단 한 방에 전면유리까지 날아간 놈의 머리가 깨어진 유리에 박혔다.

조용히 조수석 문을 열고 나와 족적을 남기지 않으려 발끝으로 놈의 차를 힘차게 밀었다.

차는 저수지에 꿀럭꿀럭 기포를 내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일주일 만에 저수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자 앵커가 뉴스를 전했다.

"혐의를 부인해 오던 피의자가 사체로 발견됨에 따라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경찰은 피의자가 단순사고사인지 아닌지 원인 파악에 나섰습니다. 한 편, 물 속에서 발견된 피의자는 눈이 거의 신체 밖으로 돌출되고 혀가 나와 있는 등 이른바 '사천왕 현상'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 봐."
"..."

후배 형사는 노랑머리를 일단 돌려보낸 후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이 자식 성범죄 전력이 있는데요..."


챝녀를 꼬마차에 태운 '노란'놈은 방을 알아보러 가자며 대학가 원룸촌을 조금 도는 척하다 인적이 으슥한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의심스런 투로 챝녀가 말했다.
"방 구해 달라며."

사실 챝녀는 이른바 조건만남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용돈과 사치품을 사기 위하여 친구들이 해봤다는 소문대로 '간단'이라는 글을 올리자 득달같이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첫 관계에서 번 돈으로 이곳저곳 돈을 썼으나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자 두 번 세 번 경험이 늘어갔다.
이번에도 엄마와 싸운 뒤 가출하여 지낼 곳이 없자 성관계를 조건으로 거처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이런 상황이 닥치니 점점 남자가 의심스럽고 무서워졌다.

이제는 단종되어 중고차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색 경차 한 대가 한적한 시골 산길로 접어들더니 한쪽으로 집채처럼 쌓여 있는 건초더미 옆에 멈춰섰다.

"먼 저 한 번 하자!"
놈이 노골적으로 말했다.
"무슨..."
챝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살며시 조수석 문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
놈이 콧방귀를 꼈다.
챝녀는 조수석 문을 열어보았으나 차가 워낙 건초더미 옆에 바짝 붙어 십센티미터 장도 밖에 틈이 생기지 않았다.

"씨발!"
챝녀가 욕을 뱉으며 미친사람처럼 차 문짝을 흔들었다.
그 순간 놈이 몸을 날려 그녀를 덮쳤다. 챝녀는 육중한 놈의 몸에 깔리자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허둥대던 놈의 손이 그녀의 바지 지퍼를 뜯어낼 듯 세차게 내리더니 팬티와 함께 무릎 아래까지 벗겼다. 그녀가 눈을 감자 철거덕 하더니 시트가 뒤로 넘어간 후 뒷자리까지 밀려났다. 이어 뜨거운 것이 몸속으로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메마른 그녀의 몸은 고통으로 신음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고 노란 꼬마차는 풍랑을 만난 고깃배처럼 흔들렸다.

"뭐야, 너는?"
쪽방 같은 문방구 한켠에서 컴퓨터로 음란사이트를 기웃거리느라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있던 노란놈은 내가 나타나자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뭐긴 손님이지."
나는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놈의 앞머리를 잡아 키보드에 내리찍었다. 물론 오늘은 수트를 입고 있다.

"!"
쿵하며 찍힌 넘의 머리에 키보드는 산산조각 났다.
", 왜 이러시는데요?"
순간 놈의 눈에 한없이 약자라는 듯한 비굴함이 묻어났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나는 우리나라 최저음의 배우 목소리를 흉내냈다.

이개월 정도 지난 터라 놈의 머리는 거의 탈색이 이루어져 이제 '노랑기'는 어렴풋하였으나 그의 얼굴 어디에서든 동정심을 유발할 만한 구석은 없었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대충 가게를 정리한 뒤 노란놈이 밖으로 나왔다.
"차는?"
내가 물었다. 물론 노랑색의 꼬마차를 말하는 것이다.
"팔았어요."

"?"

"일전에 내다 팔았어요, 재수없어서."
놈이 카악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 재수가 없어?

나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일단 참기로 하고 다시 되물어 보았다.
"그럼 뚜벅이야?"
겁먹은 눈이 약간 풀린 듯 놈이 말했다.
"근데 차는 왜요?"

"왜긴, 그럼 여기서 죽을 거야?"

다시 공포스런 눈으로 변한 놈은 검은 민무늬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낀 내가 누구냐며 울먹거리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길건너 편에 주차된 빨강색 새 경차를 깨웠다.

"!"

- 이번엔 빨강이냐?

놈의 차에 올라타자 내가 말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저수지로 이동!"

놈은 코미디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씨부렁대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놈은 화려한 원색을 좋아하는데 나는 올블랙이다. 놈은 범죄자인데 나는 경찰이다.
오늘 놈을 응징하려는 내 행위는 무엇인가. 또다른 범죄가 아닐까 싶어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 내 죄의 심판은 하늘나라 높이 계신 분이...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직업 앞에 '대한민국'을 븥인 이유는 영화를 많이 봐서다. 왜, 영화에서 자주 그러지 않던가  '이 새끼가 대한민국 검사를 뭘로 보고'.

사실 낮에만 경찰이지 퇴근 후에 나는 자유인이다. 그리고 나만의 비밀인데 나에겐 '비밀 수트'가 한 벌 있다. '아이언맨' 수준은 아니지만 '캡틴아메리카'  정도는 된다. 출처는 이 다음에 밝히겠다.

수트의 용도는 '정의 구현'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구속되지 않으면 우선 발뺌하거나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네 법은 물기를 한껏 머금어 아무리 휘둘러도 타격을 줄 수 없는 솜방망이와 같다.

나는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해 왔다. 난폭운전 하는 자, (여기서 '자(자)'는 남녀를 포함한다.) 보복운전자, 주폭, 패륜아, 길가다 어깨 부딛쳤다고 욕하고 폭행하는 자, 개 데리고 다니며 똥 뉘고 뒷처리 안 하는 자, 목욕탕 가운데 거품 올라오는 한가운데 앉아 부르르 떠는 자, 식당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손님을 탓하는 자, 장애인 구역에 상습 주차 위반라는 자 등등 이른바 공공의 적들을.

어떤 방법을 쓰느냐고?

그건 바로... 저녁에 그런 자들의 뒤를 따라가 으슥한 곳에서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뒤통수를 '쌔리는' 것이다. 단, 반드시 손바닥을 쓴다.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부위는 주먹보다 손바닥이 더 아프다. 맞는 면적이 넓어서일까? 한마디로 눈이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이때는 수트를 입지 않는다. 수트를 입으면 힘이 평상시보다 열 배 정도 세지고, 높은 곳에서 뛰어도 착지 무렵에 몸이 가볍게 뜨는 기능이 있다. 이걸 입고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면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장이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곳 어느방 다락에서 발견한 수트를 보고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생전의  아버지 것인데 자기는 입어본 적이 없다며 나에게 준 것이다. 독일어로 된 매뉴얼과 함께.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들을 찾아내 응징하냐고? 내가 누군가, 대한민국 경찰 아닌가.

어느날 채팅 앱을 통해 미성년자를 강간한 혐의로 노랑머리 한 녀석이 서에 잡혀왔다.  서른 중반쯤 되는 나이에 머리는 노랑색이 탈색되는 중인지 몰라도 검은색과 합쳐져 그 모습이 마치 하이에나와 같았다.

"강간이 아닙니다."

하품하며 조용히 창밖으로 멍때리고 있다가 갑작스런 큰소리에 다들 그놈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무슨 소리야? 피해자가 중3이야, 중3!"

조서를 받던 후배 형사가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놈의 주장은 이랬다.

무료해 죽을 지경에 놓이자 아침 댓바람부터 채팅 앱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어디 또 하나 걸려들만한 어린여자 없나 물색한 것이면서 '채팅' 탓한다.)

그러다 '(조건) 방 구해요'라는 글을 보게 되자 직감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느끼며 빛의 속도로 클릭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 방만 구해주면 됨?
= 넹 ^^ 나 가출!
- 그럼 뭐 있음?
= 원하는대로
- 방을 어디에?
= 우리집만 아니면 됨!
- 전번 찍으삼

놈은 챝녀에게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곧바로 전화하여 만날 것을 요구했으나 그녀가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보자고 하여 다음 날 약속장소로 나갔다.

노랑머리에 노랑색과 주황색으로 물들인 미니카를 몰고. 지하철역 앞에서 빨간 후드티에 'B' 메이저리그 모자를 쓰고 있는 챝녀를 픽업한다.

"상대가 미성년자인지 몰랐어?" 후배 형사가 묻는다.
"전혀 몰랐는데요."

- 뻔뻔한 자식

놈은 '떡톡'이라는 채팅 앱에 19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챝녀가 미성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가출했다더라며, 척보면 어린 학생인지 분간이 안돼?"
후배 형사가 점점 열 받나 보다.
"몰라요,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챝녀를 꼬마차에 태운 '노란'놈은 방을 알아보러 가자며 대학가 원룸촌을 조금 도는 척하다 인적이 으슥한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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