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차를 잘 댔느니 말았느니 을과 갑이 이야기 중입니다.

을이 갑에게 칭찬의 의미로 한마디 하네요.

을 : "다른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갓길에 잘 붙여 대셨네요."

갑 : "그게 아니고, 그쪽은 곡면입니다. 바짝 붙여 댈 수가 없어요."

을은 의아해 집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갑자기 갑이 '미투' 운동과 관련한 기사를 보더니 이야기를 꺼냅니다.

말을 걸어오니 을은 자기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을 : "이제 그사람은 정치 생명이 끝났네요."

갑 : "그게 아니라, 그사람은 구속되어야죠."

을은 다시 되짚어 생각해 봅니다. '뭐가 자꾸 아니라는 걸까?'

 

커피를 타며 갑이 갑자기 을의 신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언가 미안했을까요?

갑 : "이번에 입학한 아이는 학교에 잘 갑니까?"

을은 아침에 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떠올리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을 : "멀리서 지켜보니 등교길에 이쪽 저쪽 돌아다니더라구요."

 

갑 : "그게 아니라, 아이들은 뭐라고 하면 안됩니다. 앞으로 더 어긋날 수도 있어요."

을 : "…"

 

 

메이저리그 용품 판매점에 방문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인다. 대여섯 명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이 모자 저 모자를 번갈아가며 썼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그중 딸로도 보이고 엄마로도 보이는 여자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나쁘지 않아"라고 외친다.

이어서 아이의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다시 "나쁘지 않네"라 하더니 어르신으로 보이는 노인에게도 모자를 씌우고는 옆사람에게 "나쁘지 않지? 응. 나쁘지 않아"를 반복한다.

나는 순간 그 여자를 해외 유학파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는 것은 '좋다'는 뜻의 영어식 표현 'not bad'이잖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또다시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너~~무 괜찮다"

오늘 무슨 날인가보다.

'너무'는 부정어와 결합하는 단어다.

좋을 경우 '정말 좋다'거나 '진짜 좋다'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 와중에도 '나쁘지 않은' 여자와 '너무 좋은' 남자가 "나쁘지 않지?"와 "너무 좋지 않냐?"를 남발한다.

나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좋을 수도 있는' 모자를 내려놓고 조용히 매장을 나왔다.

"님이 올린 게 벌써 결재가 나셨더라고요."

"아까 부장님이 전화가 오셨더라고요."

 

일하다가 방금 들은 말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 말인데요.

(글감이 나타났다고 생각되어 몇 자 적어 봅니다.)

해마다 한글날 언저리에 저런 내용의 뉴스가 가끔 나오죠.

커피숍 점원이 "손님, 카페라떼 2잔 나오셨어요." 했다네요.

무언가 표현이 이상하지 않나요?

대화의 주체가 자기보다 웃어른일 때 써야할 경어가 많이 어려운데요.

가만히 읽어보세요. '결재가 나신 게 아니고, 전화가 오신 게 '아니죠?

마찬가지로 '카페라떼 2잔'님께서 어디에서 나오실까요, 커피머신에서 걸어서 나오시나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에 오류 투성이가 제법 많은데요.

이참에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시죠.

높임말을 쓸 주체를 높여야지 그 주체의 행위나 사물을 높여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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