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직업 앞에 '대한민국'을 븥인 이유는 영화를 많이 봐서다. 왜, 영화에서 자주 그러지 않던가  '이 새끼가 대한민국 검사를 뭘로 보고'.

사실 낮에만 경찰이지 퇴근 후에 나는 자유인이다. 그리고 나만의 비밀인데 나에겐 '비밀 수트'가 한 벌 있다. '아이언맨' 수준은 아니지만 '캡틴아메리카'  정도는 된다. 출처는 이 다음에 밝히겠다.

수트의 용도는 '정의 구현'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구속되지 않으면 우선 발뺌하거나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네 법은 물기를 한껏 머금어 아무리 휘둘러도 타격을 줄 수 없는 솜방망이와 같다.

나는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해 왔다. 난폭운전 하는 자, (여기서 '자(자)'는 남녀를 포함한다.) 보복운전자, 주폭, 패륜아, 길가다 어깨 부딛쳤다고 욕하고 폭행하는 자, 개 데리고 다니며 똥 뉘고 뒷처리 안 하는 자, 목욕탕 가운데 거품 올라오는 한가운데 앉아 부르르 떠는 자, 식당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손님을 탓하는 자, 장애인 구역에 상습 주차 위반라는 자 등등 이른바 공공의 적들을.

어떤 방법을 쓰느냐고?

그건 바로... 저녁에 그런 자들의 뒤를 따라가 으슥한 곳에서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뒤통수를 '쌔리는' 것이다. 단, 반드시 손바닥을 쓴다.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부위는 주먹보다 손바닥이 더 아프다. 맞는 면적이 넓어서일까? 한마디로 눈이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이때는 수트를 입지 않는다. 수트를 입으면 힘이 평상시보다 열 배 정도 세지고, 높은 곳에서 뛰어도 착지 무렵에 몸이 가볍게 뜨는 기능이 있다. 이걸 입고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면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장이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곳 어느방 다락에서 발견한 수트를 보고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생전의  아버지 것인데 자기는 입어본 적이 없다며 나에게 준 것이다. 독일어로 된 매뉴얼과 함께.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들을 찾아내 응징하냐고? 내가 누군가, 대한민국 경찰 아닌가.

어느날 채팅 앱을 통해 미성년자를 강간한 혐의로 노랑머리 한 녀석이 서에 잡혀왔다.  서른 중반쯤 되는 나이에 머리는 노랑색이 탈색되는 중인지 몰라도 검은색과 합쳐져 그 모습이 마치 하이에나와 같았다.

"강간이 아닙니다."

하품하며 조용히 창밖으로 멍때리고 있다가 갑작스런 큰소리에 다들 그놈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무슨 소리야? 피해자가 중3이야, 중3!"

조서를 받던 후배 형사가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놈의 주장은 이랬다.

무료해 죽을 지경에 놓이자 아침 댓바람부터 채팅 앱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어디 또 하나 걸려들만한 어린여자 없나 물색한 것이면서 '채팅' 탓한다.)

그러다 '(조건) 방 구해요'라는 글을 보게 되자 직감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느끼며 빛의 속도로 클릭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 방만 구해주면 됨?
= 넹 ^^ 나 가출!
- 그럼 뭐 있음?
= 원하는대로
- 방을 어디에?
= 우리집만 아니면 됨!
- 전번 찍으삼

놈은 챝녀에게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곧바로 전화하여 만날 것을 요구했으나 그녀가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보자고 하여 다음 날 약속장소로 나갔다.

노랑머리에 노랑색과 주황색으로 물들인 미니카를 몰고. 지하철역 앞에서 빨간 후드티에 'B' 메이저리그 모자를 쓰고 있는 챝녀를 픽업한다.

"상대가 미성년자인지 몰랐어?" 후배 형사가 묻는다.
"전혀 몰랐는데요."

- 뻔뻔한 자식

놈은 '떡톡'이라는 채팅 앱에 19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챝녀가 미성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가출했다더라며, 척보면 어린 학생인지 분간이 안돼?"
후배 형사가 점점 열 받나 보다.
"몰라요,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챝녀를 꼬마차에 태운 '노란'놈은 방을 알아보러 가자며 대학가 원룸촌을 조금 도는 척하다 인적이 으슥한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계속>

 

주차장에 차를 잘 댔느니 말았느니 을과 갑이 이야기 중입니다.

을이 갑에게 칭찬의 의미로 한마디 하네요.

을 : "다른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갓길에 잘 붙여 대셨네요."

갑 : "그게 아니고, 그쪽은 곡면입니다. 바짝 붙여 댈 수가 없어요."

을은 의아해 집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갑자기 갑이 '미투' 운동과 관련한 기사를 보더니 이야기를 꺼냅니다.

말을 걸어오니 을은 자기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을 : "이제 그사람은 정치 생명이 끝났네요."

갑 : "그게 아니라, 그사람은 구속되어야죠."

을은 다시 되짚어 생각해 봅니다. '뭐가 자꾸 아니라는 걸까?'

 

커피를 타며 갑이 갑자기 을의 신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언가 미안했을까요?

갑 : "이번에 입학한 아이는 학교에 잘 갑니까?"

을은 아침에 본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떠올리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을 : "멀리서 지켜보니 등교길에 이쪽 저쪽 돌아다니더라구요."

 

갑 : "그게 아니라, 아이들은 뭐라고 하면 안됩니다. 앞으로 더 어긋날 수도 있어요."

을 : "…"

 

 

메이저리그 용품 판매점에 방문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인다. 대여섯 명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이 모자 저 모자를 번갈아가며 썼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그중 딸로도 보이고 엄마로도 보이는 여자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나쁘지 않아"라고 외친다.

이어서 아이의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다시 "나쁘지 않네"라 하더니 어르신으로 보이는 노인에게도 모자를 씌우고는 옆사람에게 "나쁘지 않지? 응. 나쁘지 않아"를 반복한다.

나는 순간 그 여자를 해외 유학파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는 것은 '좋다'는 뜻의 영어식 표현 'not bad'이잖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또다시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너~~무 괜찮다"

오늘 무슨 날인가보다.

'너무'는 부정어와 결합하는 단어다.

좋을 경우 '정말 좋다'거나 '진짜 좋다'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 와중에도 '나쁘지 않은' 여자와 '너무 좋은' 남자가 "나쁘지 않지?"와 "너무 좋지 않냐?"를 남발한다.

나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고 너무 좋을 수도 있는' 모자를 내려놓고 조용히 매장을 나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식빵을 익혀야 하는 게 싫어 토스터를 구입했다.

남편이 사용서를 본 후 아내에게 사용법을 일러주고, 주의사항 등을 알려준다.

세월이 흐르고...

어쩌다보니 집에 혼자 남게 된 남편이 갑자기 식빵에 잼을 발라 먹고 싶어진다.

남편은 토스터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전원을 연결했지만 그 다음 작동법을 전혀 모른다.

아무거나 누르다가 고장이 날까봐 겁이 난다.

이윽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사람들은 급할 때 전화 받는 법이 없다.

이런 경우는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가전제품에서 마찬가지다.

 

※ 마침 15년간 썼던 세탁기가 고장나 오늘 새 걸로 아내에게 선물했더니 좋아라 하며 곧바로 이불 빨래를 하네요. 갑자기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님이 올린 게 벌써 결재가 나셨더라고요."

"아까 부장님이 전화가 오셨더라고요."

 

일하다가 방금 들은 말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 말인데요.

(글감이 나타났다고 생각되어 몇 자 적어 봅니다.)

해마다 한글날 언저리에 저런 내용의 뉴스가 가끔 나오죠.

커피숍 점원이 "손님, 카페라떼 2잔 나오셨어요." 했다네요.

무언가 표현이 이상하지 않나요?

대화의 주체가 자기보다 웃어른일 때 써야할 경어가 많이 어려운데요.

가만히 읽어보세요. '결재가 나신 게 아니고, 전화가 오신 게 '아니죠?

마찬가지로 '카페라떼 2잔'님께서 어디에서 나오실까요, 커피머신에서 걸어서 나오시나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 중에 오류 투성이가 제법 많은데요.

이참에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시죠.

높임말을 쓸 주체를 높여야지 그 주체의 행위나 사물을 높여서는 안 돼요.

 

김민식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다 묵혀둔 블로그가 떠올랐어요. 2008년 개설 후 여지껏 버티고 있던 글 같지 않은 글 3개를 지우고 블로그 스킨을 갈아입혔네요.

목표는 '매일 블로깅'입니다. 사실 그간 수많은 방법으로 사이버 세상에 돼먹지 않은 글들을 올렸건만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를 알리기보다 익명의 그늘 뒤로 한발짝 숨는 버릇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이제 시원하게 날아보려 해봅니다.

요조의 '에구구구' 검색하다 티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참신하다.

초대해 준 marihuana_(log.marihuana.kr)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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